01_The Lie Lay Land ■

Gallery
2023.05.14

 

이쥬인 리이치 & 미나미노미야 슈야
[praying zero]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은 일들이 많았겠지」
소재 주의: 약물 중독·자살사고 관련 묘사 포함

더보기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은 일들이 많았겠지」

가설,
실험,
해석.
그러니까, 지표면의 95%는 바다로 뒤덮이고 말았다.
파도에는 이형의 존재가 뒤섞여 밤낮없이 살아 있는 것들을 현혹했다. 물안개 속에는 달콤한 꿈과 부드러운 평온이 모두 있었다. 사람을 증오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게 허락되는 세계는 종말을 맞이했다.


praying zero


해안도로를 한참 달려 도착한 곳은 사용되지 않는 항구였다. 우리는 말 없이 밴에서 내려, 낡은 테트라포드로 둘러싸인 방파제 끝까지 걸어갔다. 콘크리트 바닥 위 누군가 쓰다 버린 낚시 도구가 나뒹굴고 있다. 수평선 끝에서 일정히 밀려오는 파도의 진동, 울퉁불퉁한 암석에 잔물결이 밀려들며 발생하는 파열음, 눈이 시릴 만큼 푸른 새벽 하늘과, 그것을 비추고 있을 뿐인 투명한 겨울 바다. 생물의 사체가 부패하는 향기에 둘러싸인 어떻게도 할 수 없고 더는 나아갈 수 없는 끝. 돌이켜 보면 처음부터 곁에 있었고, 언제나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척을 하고, 사람을 싫어하는 듯이 행동하고, 타인에게서 무엇도 받지 못하는 인간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심해에 가라앉힌 무언가를. 버리지도 않으며 건져 올리지도 않는다.
상대가 금방이라도 빠질 듯 난간 앞에 선다. 나는 침묵을 깨트렸다.

뭘 하려고 여기까지 왔어?
쓸모없는 걸 버리러…….
세이토…….
왜?
추워.
따라온 건 슈야잖아. 그는 머플러를 풀어 내게 둘러주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넣는다. 포장을 뜯지 않은 약병이 손톱에 부딪혀 달그락대는 소음을 낸다. 유리병을 꺼내 수평선의 경계를 비춰본다. 한 알밖엔 남지 않았다. 

지금 돌이키면 충실한 시간이었어. 그렇지 않아? 상대가 중얼거린다.
모르겠어. 우리는 겨우 마주 보았다.
세이토랑 같이 갈 수는 없어. 저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아니. 저 너머에는 모든 것이 있어.
그는 쾌활하게 이야기했다. 눈을 뜬 순간부터, 원하는 건 죽음 뿐이지. 그러니까 모두 감정 따위 포기하고 증발해 버린 것 아냐. 무로 돌아가는 것만큼의 축복은 없어. 순간 눈앞이 흔들렸다. 빛무리가 망막의 세포 하나하나에 칼을 박듯 스며들고, 입 안에 달짝지근한 향기가 맴돌고 귓가엔 이명이 울리다가 곧 사라져버렸다.
슈야, 우리는 지금까지 잘 버텼어. 하지만 사람에게 남은 길이 이것뿐인 이상 내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야. 거짓말은 하지 않을게. 쓸모없는 것들은 버려질 수밖에 없지─우리는 세계에 필요 없었던 거야.
네 이야기 따위 믿지 않아.
거짓말이 아니라니까.
거짓말이건 진실이건 상관없어. 자. 이곳에 남을 사람을 정하자. 너도 알고 있겠지만, 남겨질 사람은 나. 나는 흰 알약을 손바닥 위 올린 다음 삼켰다. 그러자 정말 남은 방법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
누군가 웃음소리를 냈다. 모래사장을 밟던 다리가 휘청거리고, 현기증을 동반한 열감이 전신을 휩싼다. 이상하게도 슬프다고 느끼지 못하는 건 결함일까? 이 순간을 아주 예전부터 기다려왔기 때문에 막상 때가 되니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어버린 걸까? 텅 빈 두 손으로 상대의 손을 잡고 한 발짝씩 걸음을 옮기다가, 스텝은 점차 재즈 댄스가 된다. 두 사람은 정말로, 어디선가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가 들려오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진다……. 

→ 추억은 가라앉을 뿐, 지금의 행복이라 여기는 일은 없고

몇 분이 지나면, 백사장에 홀로 서 있다.
어딘가의 스피커에서 음악이 계속 흐른다. 남겨진 것은 극도의 자기혐오와 모순적 상실감. 그리고 저 멀리서 타인이 타인을 부르는 목소리가 울리면,
나는 세계 따위 멸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